2020년 3월 12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지하수실비아 박귀석안나(기일) 한윤보요한 전만재(기일)
생미사: 지현숙 세실리아 이승우베드로 이희영끄렌센시아 이진영루치아 서동철 프란치스코 레지오 단원

말씀요점
예레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17,5)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17,7)

시편 1
“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마태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16,25)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16,2”(16,26)

짧은 강론
작년 한 해 생활성서에 ‘행복한 비유읽기’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전 세계 영화제의 수많은 상을 휩쓴 영화 ‘기생충’을 해설하면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말씀을 설명한바 있습니다. 제가 본 이 영화의 핵심은 부자와 가난한 이가 ‘공생’할 수 없고 ‘기생’해야만 가난한 이가 소위 상류 사회의 자리에 가 닿을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밀도 있게 표현한 영화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비유 속의 부자는 오늘날로 보면 명품 백과 명품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서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가 매번 마주치는 그의 집 문간에 앉아 있는 라자로는 어쩌면 자신과는 존재의 근원부터가 다른 별종의 동물이거나 아니면 벌레처럼 여기고 지나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 부자는 한 인간존재의 존엄성과 소중함을 보기보다 그 사람의 행색과 소유로만 그를 판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부자의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가난한 이와의 이런 의식의 거리가 그의 영혼과 하느님 사이에 건너 갈 수 없는 구렁이라는 것을 오늘 복음의 비유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겉으로는 잘 차려입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산다고 해도 우리 의식 안에 사람에 대한 판단과 차별, 혐오, 편견, 멸시 등이 숨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는 이를 수 없게 하는 구렁인 것입니다. 그 구렁의 깊이가 넓고 깊을수록 겉은 화려한 인생을 살지 모르지만 영혼 없는 삶이 되고 맙니다. 우리 사회에 라자로는 누구입니까? 그와 나와의 심리적 거리는 얼마입니까? (도봉산 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