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7일 사순 제3주일 화요일

미사지향
생미사: 탁현수요셉(감사) 서동철 프란치스코 윤성현(가정) 레지오 단원

말씀요점
다니
“이제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3,41)
“당신의 호의에 따라,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희를 대해 주소서.”(3,42)

시편 25
“주님, 당신의 자비 기억하소서.”

마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18,21)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18,22)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18,33)

짧은 강론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어려운가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하나는 죄를 짓지 않고 살기가 어렵고, 다른 하나는 용서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다는, 쉽지 않은 인간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며 늘 그분 발치에서 가르침을 듣고 그분의 행실을 보아온 베드로조차도 오늘 복음에서처럼,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일곱 번까지 용서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여쭐 정도입니다. 어쩌면 베드로도 이제는 더 이상 형제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임계점에 다다른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 그러니까 끊임없이 용서하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임금에게 만 탈렌트 빚진 사람이 자신은 그 큰돈을 탕감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 자신에게 백 데니라온 빚진 사람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유말씀을 들려주십니다. 당시 통용되던 화폐에서 ‘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들의 품삯에 해당되었는데, 탈렌트는 데나리온의 약 6천배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당시 가장 높은 화폐단위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임금에게 만 탈렌트 빚을 졌다는 것은 온 가족이 대대로 평생을 일을 하며 갚아도 다 갚지 못할 빚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께 만 탈렌트의 빚을 지고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순절,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해보면 만 탈렌트의 의미가 깊이 와 닿습니다. 우리가 한시도 쉬지 않고 온갖 집착과 탐욕으로 늘 숨 막히는 삶을 사는 데 그분의 일만 탈렌트의 사랑이 아니면 어떻게 숨 쉬며 살 수 있겠습니까? 매일 매일 죄를 짓고 질투와 콤플렉스로 시달리며 살고 있는데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의 용서가 아니면 어떻게 우리가 이렇게 얼굴을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만 탈렌트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그분이 용서와 사랑을 깨달은이들만이 참으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신앙의 기쁨을 살 수 있습니다. 사순절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 안에서 만 탈렌트의 용서와 사랑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