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9일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미사지향
연미사: 김정례마리아(기일) 이돈경 김금구 요한
생미사: 장원진요셉(영명) 정병호요셉(가정) 최병준요셉(가정) 윤성현(가정) 탁현수요셉(감사)
서동철프란치스코 레지오 단원

2사무 7,12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로마 13,18.22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것입니다.”

마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1,20)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1,24)

짧은 강론
지난번 판단과 식별의 차이에 대한 짧은 강론을 기억하시지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늘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의로움’은 율법을 엄격히 잘 지키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셉이 ‘의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는 마찬가지로 요셉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약혼한 마리아가 알 수 없는 임신을 했다면 소리 없이 파혼만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동네방네 그의 죄를 알리고 그에 상응한 형벌을 가해야만 정의를 세우는 것이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율법적 판단이 아니라 무엇이 선인지 하느님 뜻인지 식별을 한 것이지요. 그래서 남모르게 파혼해서 마리아에게 자유를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라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분명하고 확고하게 제시되어있는 율법적 판단을 접어두고, 희미한 꿈속 천사의 명령을 따라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는 율법적 판단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고 따른 것입니다.
신념과 신앙은 다릅니다. 신념은 자신 안에 형성된 어떤 정신적 가치체계를 믿는 것이라면 신앙은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것입니다. 신념은 고정되어있고 폐쇄적이어서 때로는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이 동반되기도 하고 이념으로 갈라져 미움과 갈등을 유발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믿음의 본질을 따르는 것으로 사랑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율법은 경계가 분명해서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게 하지만 신앙은 경계가 모호해서 식별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율법은 신념을 심어주지만, 신앙은 사랑을 심어줍니다. 오늘 제2독서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 믿음을 율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스라엘의 율법을 다시 본래의 믿음으로 환원시켜 참된 의미의 의로움을 회복하였습니다. 요셉의 이런 하느님에 향한 참된 믿음이 온 인류 구원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은 이 땅의 작은 요셉이 되게 합니다. 이 의로움이 나와 이웃을 구원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축일에 이 땅의 모든 이가 작은 요셉이 되어 의로움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도봉산 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오늘 성요셉 축일에 총회장님을 비롯해 요셉 세례명 가진 분들 바다 건너에서 축하드립니다. 무사히 제주도에 잘 왔습니다. 곧 강의가 시작됩니다. 마음이 바쁘네요.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