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21일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최병무 부부 신현오 사도요한 이정진
생미사: 서동철 프란치스코 윤성현 가정 레지오 단원

말씀요점
호세
“주님께 돌아가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6,1. 3)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6,6)

시편 51
“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루카 18,14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짧은 강론
엠마오 사제 수원에서는 연수받는 신부님들이 함께 공동집전 미사를 하시는데 미사 주례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십니다. 며칠 신부님들과 머물면서 가장 큰 행복은 신부님들의 강론을 듣는 것입니다. 때로는 신부님의 강론 한 말씀이 하루 양식이 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말 사제의 강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론을 들으면서 더 깊이 느낍니다.
오늘 강론하신 신부님은 신학교에서 교수 신부님으로 계시다가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오늘 강론을 소개해드리면 교육(education)과 양성(formation)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교육이란 그 사람 안에 있는 능력을 끌어내고 세상에서 첫째가 되게 하고 일류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면, 양성은 신학생들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꼴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뜻을 따르도록 하는 것, 멈추어야 할 때 멈추고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는 삶을 살도록 안내하는 것이 양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있지만 대침묵을 지켜야 하고 밤이 되면 정시에 불을 끄고 잠을 자야 하는 하느님 뜻에 순응하는 삶을 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는 문제없고 능력 있는 사람을 키우는 장소가 아니라 부족함을 고백하고 자비를 청하며 살아가는 삶을 사도록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학교가 첫째가 되도록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꼴찌가 되도록 가르치는 삶, 이 역설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저에게 깊은 공감을 줍니다.
사실 신학생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내려놓을 때 내려놓고, 멈출 때 멈출 수 있는 삶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로 우리 사회는 어쩌면 멈춤의 시간을 가르치는지도 모릅니다. 도시의 사람들도 마치 느린 화면처럼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고 멈추어있는 듯합니다. 첫째만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던 사회,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앞만 향해 달리기만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잠시 멈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멈추고 느리게 가면 안 보이던 것이 보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시는지요? 세상에서는 꼴찌로 살지만 그 꼴찌를 첫째로 삼아 함께 동반하시는 주님이 보이시는지요? (도봉산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