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25일 사순 제4주 수요일(주님탄생예고대축일)

미사지향
연미사: 이정진
생미사: 본당주임, 부주임신부 박민재 미카엘 신부 박재석 안셀모 신부 임태순미카엘(가정) 문일임데레사 윤성현(가정) 서동철프란치스코 박혜숙그라시아(영명) 기은혜 베로니카(감사) 임화영 아녜스(감사) 기호중 안드레아(감사) 기강서 요셉(감사) 레지오단원 산상수훈 성가대단원(가정)

말씀요점
이사 7,14. 8,10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 10,9-10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루카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짧은 강론
며칠 전 제주도 엠마오 사제 연수원에 강의 차 갔다가 성모님 신심이 깊은 선배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신부님이 언젠가 본당에서 예비자 교리를 하면서 묵주기도를 설명했더니 개신교에서 온 예비자 한분이 ‘기도는 예수님이 중심인데 묵주기도는 왜 주님의 기도는 한번만하고 성모송은 열 번 하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여기에 대답을 못했더니 결국 그는 가톨릭은 ‘마리아 교회’라며 떠났다고 했습니다. 개신교 신자였던 사람에게 성모님에 대한 ‘교회의 전승’이나 교회에서 공인된 ‘사적 계시’로 묵주기도를 설명해봐야 오히려 더 오해만 불러일으킬 뿐이겠지요. 신부님은 그 때 충격을 받으셔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답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 신부님에 의하면, 우리가 암송하는 성모송의 첫 줄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했던 말은, 천사는 단순히 하느님의 전령일 뿐이고 바로 그 말은 ‘성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엘리사벳이 큰소리로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의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라는 고백도, 엘리사벳의 말이 아니라 성령으로 가득차서 했던 ‘성령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엘리사벳이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라고 “주님의 어머니”를 고백함으로써 성모송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신비를 고백하는 놀라운 기도임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신부님 개인의 묵상에서 온 깨달음이지만, 분명히 성모님은 주님 강생의 첫 선택을 받아 성자 예수님을 잉태하신 구세주의 어머니이시며, 인류 구원을 여는 성부와 성령의 첫 경탄의 말씀을 받은 분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구원경륜의 신비 안으로 초대 받은 첫 인간이면서 동시에 삼위일체의 신비를 모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모송을 바치며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성부와 성령의 이 첫 경탄의 말씀을 되 뇌이며 성모님과 함께 삼위일체 신비에 참여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모송과 주님의 기도는 비교 우위를 가릴 수 없이 둘 다 소중한 교회의 기도입니다. 다만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의 원의를 나의 것으로 삼아 하느님 아버지께 ‘기원과 청원’을 드리며 묵상(meditation)을 하는 기도라면, 성모송은 그 경탄의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구원 의 신비를 관상(contemplation)하며 바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 탄생 예고 축일에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고 하신 인류 구원의 문을 여시는 하느님 첫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묵주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과 함께 그 구원의 역사에 초대를 받습니다. (도봉산 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
*짧은 강론이 자꾸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