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2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이정진
생미사: 김병욱 대건안드레아(가정) 박창해 필립보(가정) 서동철 프란치스코 윤성현(가정) 레지오 단원 산상수훈성가대단원(가정)

말씀 요점
탈출 32,12
“당신 자신을 걸고….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시편 106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요한 5,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짧은 강론
한국교회는 성경을 잘 설명하는 좋은 강사들도 많고 성경 말씀을 더 알고 싶어 목말라하는 신자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신자들이 여기저기 좋은 강의를 찾아다니며 영적인 갈망을 채우고자하고 있습니다. 좋은 강의와 공부로 성경의 지식을 넓혀가는 것은 이성적 식별 능력을 키워주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본당과 삶의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신자들이 좋다는 강의만을 쫓아서 ‘영적 유목민’이 되어 끼리끼리 만남을 이루면서 떠도는 듯한 인상을 줄 때는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인 이웃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을 깨닫고 사랑하는 우리 삶이 녹아 있는 나눔이 없다면, 심하게 말하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처럼 될 우려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을 잘 안다는 유다인들, 그들은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공부했지만 정작 눈앞의 예수님은 깨닫지 못하지요.
오늘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유다인을 질타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고 연구를 하고 좋은 강의를 듣고 공부를 하지만, 정작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은 소홀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그 규정들을 실천하는 이는 그것들로 살’ 따름입니다.”(갈라3,12)라고 했지요. 활자 속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과 공동체와 결합할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육화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웃들의 삶이 함께 녹아있는 공동체를 통해 말씀 속의 예수 그리스도로를 더 깊이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믿음으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도봉산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