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31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이강량 요셉(기일) 이정진
생미사: 본당 주임신부님 부주임신부님 박민재미카엘신부님 서인애 발비나(영명) 서동철 프란치스코 윤성현(가정) 레지오 단원 산상수훈성가대단원(가정) 성찬봉사회회원 도봉산성당ME가정

말씀요점
민수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21,4-5)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21,9)

시편 102
“주님, 제 기도를 들으소서. 제 부르짖음이 당신께 이르게 하소서.”

요한 8,21. 23. 29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짧은 강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지요. 인간이 그만큼 변화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도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 두 가지 밖에 없다고 하지요. 하나는 바닥을 치듯 큰 고통을 경험하든가, 그것이 아니라면 부단히 성찰하고 수련하는 것입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인류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성적 성찰을 통해 인류의 정신문화가 발전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쟁과 질병 등, 인류가 큰 고통을 경험해야만 의식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가령, 제국주의의 팽창과 전체주의 국가에서 세계 1,2차 대전을 경험한 것처럼, 왜곡된 의식의 임계점에 이르면 전쟁 등으로 인간 삶을 파괴하는 큰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극도의 남북 간의 이념적 대결로 결국은 처참한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지요. 그런 다음에야 정신을 차려서 성찰하게 되고 약간씩 역사는 의식의 성장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처럼 제국주의나 이데올르기에서 오는 위협은 별로 없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이제는 인류와 자연과의 관계가 임계점에 다다른 느낌입니다. 자본주의가 우상시되고 극대화되면서 자연이 인류와 더불어 공존하며 살아야할 친구가 아니라 자본을 늘리는 경제적 수단이고 자원으로만 이해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끊임없는 생태계의 착취와 파괴가 자행되면서 그 임계점에서 자연의 역습으로 인류가 오히려 큰 고통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더 큰 자연의 역습이 이루어져서 인류를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재앙은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느 사회학자가 인류사회가 코로나19이전 사회와 이후 사회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코로나19 사태가 인류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커서 이번 큰 고통과 희생을 치루고 나면 인류가 의식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란 위대해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정복하고 이겨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한걸음 성숙해 갈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파멸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자연의 공격으로부터 인간의 위협을 제거하고 승리했다는 스스로의 자부심으로 여전히 자연에 대한 착취를 자행하며 살 수도 있고, 반대로 자연 앞에 겸허해져서 인류의 미래를 성찰하며 자연과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인류 공동체로 한걸음 성숙해 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하셨지요. 세속의 가치와 자본주의 경제적 논리 속에서 우리는 죄인 줄 모르고 죄 속에 살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이러스로 죽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의 죄로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이 말씀은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분이 아니라 이런 세속의 가치에 물들어 있는 분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온전히 하느님 뜻을 따르고 이를 실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을 식별하고 그 뜻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아니면 사실은 세상에 속한, 죄 속에 사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입니까?(도봉산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