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6일 성주간 월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유형식(기일) 이정진
생미사: 차양순에스텔 서동철 프란치스코 유리나 카타리나(생일) 이희영 끄레센시아(영명) 이진영루치아 윤성현(가정) 레지오 단원

말씀요점
이사 42,1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시편 27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다.”

요한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12,3) … 유다 이스카리옷이..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12.4-5)

짧은 강론
마르타와 마리아(루카10,38-42참조)의 이야기 속에 예수님 발치에만 앉아 그분 말씀 듣기에 몰두하던 마리아를 기억하지시요? 그토록 사랑하는 예수님께 마리아는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나르드 향유의 가격이 얼마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을 향한 사랑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행동을 지켜보는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유다입니다. 그는 마리아의 행동을 보자마자 금방 나르드 향유 가격이 떠오릅니다. 노동자 1년의 임금에 해당되는 300데나리온 어치의 향유 값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됩니다. 이런 비싼 향유가 그냥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불만스런 심정을 그냥 내보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불만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빙자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사랑의 관계’와 ‘이해관계’의 차이를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계산하거나 따지는 법이 없습니다. 마리아의 사랑으로 인해 나르드 향유냄새가 온 방에 가득합니다. 사랑의 향기입니다. 반대로 유다는 머릿속에 이해득실만 따지고 있습니다. 정의를 내세우지만 스승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일차적인 사랑이 없이 가난한 이들을 팔아 내세우는 정의 뒤에는 권력욕과 탐욕이 숨어있기 마련입니다. 신앙인의 중요한 덕목은 계산하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의는 그 다음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덕목입니다. (전원 신부, 「말씀으로 아침을 열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