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4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임행영바오로(기일) 김인기(기일) 이정진
생미사: 차양순에스텔 김현욱요한 김소영아녜스 강재구마르코 서동철 프란치스코 윤성현(가정) 레지오 단원 성찬봉사회회원 도봉산성당ME가정

말씀요점
에제 37,26-27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 31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요한 11,50-52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짧은 강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익숙한 말입니다. 사회적 동물의 특징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정, 학교, 직장 등 모든 분야에서 피할 수 없이 인간관계에 얽혀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공동체는 우리 인간에게 소속감을 주고 더 큰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위한 사회의 공동선을 이루어나가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람들은 집단 속에서 아무도 책임질 사람 없는 더 큰 악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카야파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그들은 예수님을 선동자로 몰아 사회혼란과 로마의 위협을 명분삼아 예수님을 희생시키고자 합니다. 자신들의 악행을 희생자에게 덧씌워서 자신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작게는 가정공동체에서부터, 교회, 사회, 인류공동체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 없는 공동체 삶을 살면서 우리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 대하여 깊이 성찰하고 식별하지 않는다면 이런 악행에 간접적 가담자가 됩니다. 우리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심을 정당화할 명분을 찾고 그 명분 뒤에 숨어서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지키기 위해 교묘하게 악의 편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예수님의 죽음에 우리가 이런 식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악행이 공동체적 심리 안에 책임을 전가하며 교묘하게 숨어 있어서 드러나지 않지만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요.(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