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8일 성주간 수요일

미사지향
연미사: 이정진 남기록 바오로(기일) 남강수 모세
생미사: 하용운 필립보 차양순 에스텔 서동철 프란치스코 윤성현 가정 레지오 단원

말씀 요점
이사
“주 하느님께서는…아침마다…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50,4)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50,8)

시편 69
“주님, 은총의 때이옵니다.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마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26,21-25)

짧은 강론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유다가 한 말입니다. 유다의 이 말에 녹아 있는 유다의 모습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첫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스승 예수님을 배신하는 행동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거나, 그것이 아니면 철저하게 자신과 남을 속이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본 복음처럼 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순 나르드 향유를 부어드리자 그 가격을 운운하며 저것을 팔아 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가 하고 반문하는 것(요한12,4-5참조)을 기억하시지요? 어쩌면 유다는 자신의 신념과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감이 뚜렷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설에 의하면 유다는 열혈(zealot)당원으로서 혁명을 통해 새로운 이스라엘을 꿈꾸는 사람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유다는 수많은 사람이 따르고 이들을 감화시키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아왔기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파스카 축제 무렵 그를 의회에 넘기면 어떤 혁명적인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생각으로는 배신을 한 것 아니라 일종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당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한편으로 유다는 예수님과 자신을 철저하게 속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 계산이 빨라서 세리였던 마태오를 제치고 공동체의 돈주머니를 관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사익을 위해 그 돈을 유용하기도 하고, 어쩌면 예수님의 그늘 아래서 제자로서 명예와 덕을 누리고 자신의 필요를 채우며 살겠다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시효가 다 되면 언제든지 배신하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가 혁명을 꿈꾸던 신념가이든, 도둑이든 관계없이 유다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님을 자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이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신념과는 달리 주도권이 주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뜻에 그분이 따라오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에 우리가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의 필요나 채우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또는 자아실현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회생활이 마치 자신의 여가활동이나 상표처럼 치장하는 삶의 엑세서리(accessory)는 더욱 아닙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을 때, 주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걷게 됩니다. 똑같이 신자의 삶을 살아도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은 빛에 이르고, 자신의 뜻만을 채우기 위해 걷는 사람은 결국은 어둠에 이릅니다. 유다가 걸었던 길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도 유다도 똑같이 이렇게 묻습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도봉산 성당,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